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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념은 어떻게 실체가 되는가? 하루키 소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by 우식장 2025. 3. 21.

표지 (yes24)

                                                                           

17세의 소년과 16세의 소녀가 여름 한 철동안 만든 가상의 도시,

그 불확실한 벽에 둘러싸인 도시를 모티브로 하루키는 무려 761페이지의 길고 신비로우며 흥미로운 이야기를 펼쳐낸다. 지독히도 성실하고 탁월한 작가의 소설은 매번 읽을 때마다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또 속절없이 빠져든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소설은 현실세계와 가상의 세계 혹은 꿈속의 세계가 혼재되고, 내가 진짜 나의 실체인지 내 그림자가 나의 실체인지 모호하며, 지금 여기 살아 있는 내가 진짜 나인지 아니면 누군가의 그림자인지 그도 아니면 그 모두가 결국 한 사람의 다른 버전인건지 계속 독자를 헷갈리게 하며 점점 몰입하게 한다.

100만명의 독자가 있으면 100만 개의 해석이 있다는 하루키의 소설은 독자들에게 다양한 해석의 장을 여는데 특별히 하루키를 무지 사랑하는 이동진 작가의 평을 참고하여 포스팅한다.

 

 

하루키의 작품 세계를 압축해 보여준다

​도시는 높은 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너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침묵의 밑바닥을 뒤져 말을 찾아 온다.
맨 몸으로 내려가 진주를 캐는 사람처럼.
어떻게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는데?
그냥 원하면 돼. 하지만
무언가를 진심으로 원하는 건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야.
-12쪽

하루키의 작품 대분에서 보이는 구조와 세계관, 주제를 따르고 있다. 중년남자가 시간이나 공간을 초월한 어떤 경험을 하고 인생을 순례하며 결국 현재로 복귀한다는 기본 설정이 그렇고 소녀가 흔적도 없이 갑자기 실종된다는 플롯도 익숙하게 보아왔다.

나, 주인공은 고등학교 시절 만났던 첫사랑을 평생 잊지 못하고 살다 그녀와 만든 가상의 도시로 우연히 들어가게 되고 그곳에서는 자신의 그림자를 없애고 오랜된 도서관에서 책이 아닌 타인들의 꿈을 읽는 작업을 한다. (1부)

그리고 어떤 계기로 다시 현실 세계로 복귀하여 오랜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시골의 작은 도서관의 관장으로 이직을 한다. 그 곳에서 이미 죽은 전 관장의 유령과 대화하고 또 그 도시를 동경하는 한 소년을 만나고 또 첫사랑 소녀의 다른 버전인 카페 여주인을 만난다. (2부-가장 많은 분량)

다시 가상의 도시, 그곳에서 나는 여전히 타인의 꿈을 읽고 있다. 2부에서 도서관장을 하며 현실 세계에서 살고 있다고 믿었던 나는 도시에서 탈출한 나의 그림자인가? 알 수 없다. 아무튼 나는 처음 도시로 들어온 그 소년과

한 몸이 되어 높은 효율적으로 타인의 꿈을 계속해서 빠르게 읽어 나간다. 이제 소년은 혼자 힘으로 꿈을 읽을 수 있으니 나에게 원래 있던 세계로 돌아가라고 말하고 나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인다.(3부)

 

관념적 세계를 실체화하는 탁월한 능력

벽을 향해 가는 남자와 밤의 도서관(pixabay)

 

그날 밤 나는 그 불확실한 벽을 넘었던 것 같다.

꿈이 아니다.

굳이 정의하자면, 현실의 가장자리 끝에 존재하는 관념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685쪽

많은 독자들이 하루키 작품 특유의 정조나 감각을 좋아한다. 전생이나 꿈, 1Q84에 나오는 공기번데기, 이 작품 속에 나오는 알 모양의 통에 담긴 오래된 꿈, 나와 내 그림자의 대화, 귀를 깨무는 옐로 서브마린 파카를 입은 소년에 대한 은유, 유령으로 만난 도서관장과의 대화 등 길게 이어지는 대화와 묘사들을 결코 지루하지 않게 사유하며 읽을 수 있다.

 

 

예술 창작 과정에 대한 흥미로운 변주

도서관과 책읽는 남자(pixabay)

이 해석은 정말 이동진 작가의 탁월함이라고 생각하는데 계승이라는 키워드를 놓고 보았을 때 주인공 나는 고야스 관장의 업무를 잇고, 나의 꿈 읽는 일은 옐로 서브마린 소년에게 계승된다. 또는 현재 꿈을 읽고 있는 소년이 있고 그 소년은 나의 과거이며 고야스 관장은 나의 미래이다. 이렇게 해석한다면 결국 세 사람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어쩌면 평생 소설을 쓰고 있는 하루키 자신.

소설가는 사람들의 꿈을 읽고 해석하며 그것들이 중요한 창작의 모티브가 된다. 현실과 상상,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타인들의 꿈을 읽고 이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거대한 예술 창작의 세계를 표현한 것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는 설명.

물론 정답은 아니지만 이토록 흥미로운 해석이 가능하도록 하며, 어떻게든 나도 작품을 해석해보고 싶다는 강한 욕구를 자극하는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읽을 때마다 감탄하게 되는 작가이다.

여러분은 이 책을 어떻게 해석하셨는지??

 

포스팅의 바탕이 된 이동진 작가의 영상